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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마을의 만추] 단풍 옷 갈아입고2020-11-12

[선돌마을의 만추] 단풍 옷 갈아입고

낙엽융단 깔렸는데

성큼 온

겨울맞이에 마음만 바빠


 



햇살은 따뜻하고 바람이 제법 차가워졌다. 코끝이 얼얼해지고 손이 시린 게 가을 끝 무렵에 닿은 듯하다. 위봉폭포 아래서 반대편 골짜기까지 이어진 길목에는 동상면 선돌(입석)마을이 있다. 산 아래 길게 늘어진 이 마을에는 43세대가 산다. 마을을 찾은 날, 나무들은 단풍 옷을 갈아입고 낙엽은 융단처럼 깔려있었다.




산골짜기에서 산다는 것은

선선한 가을도 잠시, 동상에서는 며칠 전부터 물이 얼기 시작했다. 곧 겨울이 찾아올 기세다. 평화로운 어느 오전, 텅 비어있는 마을회관 앞. 지난해까지만 해도 밥을 먹거나 언 몸을 녹이는 사람들로 북적였을 터. 회관을 찾은 강형기(62)이장은 어린 시절 기억을 꺼냈다.


국민학교는 지금은 폐교된 동광초등학교에 다녔고 폐교되고 나서는 소양면 송광리쪽으로 많이 갔죠. 중학교 땐 친구들하고 새벽에 모여가지고 같이 산 넘어 학교에 갔어요. 깜깜해도 어쩌겠어요. 학교에 늦으면 안 되는데.”


지금이야 산을 넘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길이 있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해도 아니었다. 학교를 갈 때도, 장날에 물건을 팔러 갈 때도 고개를 넘어야만 했다. 산골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 다른 선택지란 없었다.


마을회관 옆집에는 이창복(83)할아버지 부부가 살고 있다. 할아버지는 1995년 단지마을에서 이사 와서 터를 잡았다. 살아생전에 동상면을 떠난 적이 없다.


여기에서 고산까지 갈람 재를 두 번 넘어야 해요. 단지재 넘고, 그다음엔 허기재를 넘어야 하거든요. 허기재는 고개 넘다가 허기져서 죽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래요(웃음).”


 이날 김장 준비로 배추를 뽑던 전은자(74)할머니도 옛 기억이 비슷하다. 아이들 학교는 소양으로 보내고 밥과 반찬을 머리에 이고 다녔던 기억이다.

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살기 좋아요. 원래는 차도 오성리까지 가서 타야했는디 이제는 여기까지 버스가 들어오잖아요. 차 댕기니까 좋지요.

 

115년의 역사를 지닌 수만교회가 있는 선돌마을 들녘에는 겨울채비를 서두르는 마을 사람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곶감 없이도 바쁜 손길들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 서늘하게 그늘진 오후. 이맘때면 집집마다 감을 따고 깎느라 바쁘지만 올해는 어쩐지 한산하다. 마당에 옥상에 널어져 있어야 할 곶감이 보이지 않았다. 마을길 어귀에 집으로 돌아가고 있던 이창복 할아버지에게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예부터 마을에서 벼농사나 곶감 농사를 지어왔는데 올해 곶감이 심각한 흉년이에요. 서리가 일찍 내리는 바람에 감꽃이 떨어져 열매를 맺지 않아서 농사가 대부분 망했어요.”


대부분 곶감 농사를 짓는 동상면 사람들에게는 타격이 클 터.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다른 일을 하고 겨울준비를 하고 있었다.


폐교된 학교 동광초등학교 인근 생강 밭. 이희석(64)씨는 올해 처음 지은 생강 농사가 제법 잘 됐다. 해가 조금 저물었지만 아내와 딸 모두 생강을 캐고 있었다.

흙 물 빠짐이 좋아서 그런지 생강이 잘 됐어요. 생강꽃이 백년에 한번 핀다는 말이 있던데 이번에 생강꽃이 피었네요. 원래 같으면 지금이 농한기인데 우린 요새가 제일 바빠요. 날씨가 더 추워져 생강이 얼기 전에 얼른 캐야 되거든요.”


파란 대문 집 담벼락 아래 텃밭. 유춘희(83)할머니는 쪼그려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다가오는 김장 때 쓸 김장마늘이다. 금세 많이 까놓은 마늘들이 수북이 쌓여가고 있었다.

허리가 아파가지고 일을 많이 못 해요. 다음주에 며느리 손자 다 모여서 김장할 거예요. 이번엔 맛있게 되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마을회관 옆집에 사는 차점녀(78)할머니도 김장 준비로 바쁘다. 잘 익은 무를 한 아름 뽑아서 어깨에 지고 갔다. 노란 수레에는 이날 수확한 꼬들빼기와 무로 가득했다.

무는 얼으면 안되니께 얼른 담글라고요. 오늘부터 다듬고 간 죽여 놓고 씻어서 하려면 며칠 걸려요. 배추김치는 다음주 쯤에 해야 맛있을 것 같아요.”

 


뿌리 깊은 수만교회

선돌마을에는 올해로 115년의 역사를 가진 수만교회가 있다. 교회를 중심으로 마을이 감싸고 있는데 지금도 마을주민 대다수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 한편 이전에는 교회가 저수지로 수몰된 지역인 단지마을에 있었다. 수몰되기 직전인 1964년에 교회사람 열댓 명이 짐과 목재를 나르고 이곳에 다시 세운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창복 할아버지가 상황을 설명했다.


수몰되기 전에는 교회 사람이 40~50명 정도 있었는데 다들 딴 곳으로 가서 사람이 줄었죠. 그래서 열댓 명 정도 남았는데 그 사람들끼리 소릅길(오솔길)따라서 지게에다 짐 싣고 옮겼어요. 그땐 함석집으로 교회를 지었고 나중에 다시 고쳐지었죠.”


교회에서 장로를 맡고 있는 이창복 할아버지는 교회 역사의 산증인이다. 이사했을 당시 찍었던 기념사진을 보여주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읊었다. 그중에는 마을에 있는 창복 할아버지와 백성녀(100)할머니도 있었다.


멀리서 바라봐도 새하얀 교회 건물의 머릿돌은 1977814일에 세워졌다. 현재 수만교회는 이현규 목사가 목회를 맡고 있다. 주로 입석마을, 단지마을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며 교인은 대략 30명 정도이다. 입석마을 강형기 이장도 수만교회에 다닌다.


교회에 사람이 가장 많을 때는 62명 정도였어요.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가거나 나이 들어 돌아가셔서 사람이 줄었죠. 예전에 종탑이 울릴 땐, 일요일에 두 번 종이 울렸어요. 그러면 밭일 하다가도 예배드리러 교회로 향하곤 했죠.”



선돌(입석)마을은

101세 백성녀 어르신 최고령

마을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설입돌석이다. 입구에서 마주보이는 산 중턱에 사람머리 형상 바위 선돌이 세워져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입석마을 보다는 선돌마을이라고도 불린다. 또한 예부터 주민들 사이에서 윗 마을은 지향마을’, 아랫 마을은 입석마을로 나누어 칭했으나 행정구역상으로는 모두 입석마을로 되어있다. 현재 마을 인구는 60~70대가 가장 많고 최고령자는 101세인 백성녀 어르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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