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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마을의 만추] 흙집에 사는 박희석-이길순 부부2020-11-12

[선돌마을의 만추] 흙집에 사는 박희석-이길순 부부

흙과 짚처럼 따뜻하게 결속 '함께한 삶도 든든'


자식 가르치러 떠났다 13년 전 귀향

"가장 행복 절대 안 팔고 싶은 집"


구름은 하얗고 울긋불긋 물든 산 아래 지향마을. 코끝이 시리게 추운 날이었다. 마을 길 따라 개울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옛집이 보였다. 집 앞에 쌓아 올린 장작과 장독 여럿이 눈에 띄었다.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던 찰나, 안에서 분주하게 밥 짓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요?”

인기척을 들은 이길순(72)할머니가 물었다. 곧이어 낯선 객을 마루에 앉히셨다. 할머니는 스물 한 살에 폭포 너머 위봉마을에서 이곳으로 시집왔다.


우리 친정집에서 결혼식 올리고 여기로 오자마자 시어머니랑 남편이랑 함께 살았어요. 이 집에서 기억은 다 생생해요.”


가만히 집을 둘러보니 그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둘투둘한 흙벽, 견고한 서까래와 기둥이 견뎠을 시간들 말이다. 박희석(80)할아버지는 집 지었을 당시를 떠올렸다.



“6.25 전쟁 때 집이 불 타버려서 움막 같은 걸 짓고 살다가 나중에 이 집을 지었어요. 산에 올라가 바작에다 흙 담고 지게지고 내려와서 작두에다가 쓸었대요. 그럼 흙이 보들보들해지는데 그걸 지푸라기랑 엮어가지고 벽에다 바른 거예요.”


자식들 교육때문에 전주로 나가살다가 13년 전 옛날 흙집으로 돌아온 노부부는 세월을 고스란히 지닌 이 집에서의 생활이 가장 행복하다


1967년에 지어진 집 구조는 부부가 단촐하게 살기에 알맞다. 높지 않은 마루를 올라서면 방 두 개가 양쪽에 있고 구석구석 깔끔하지 않은 곳이 없다.

내내 여기 산 것은 아니에요. 애들 갈칠라고 전주로 나가서 한 45년은 살았어요. 골짜기 사는 사람들은 애들 때문에 다 어쩔 수 없다니까요.”


부부는 큰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전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또 아이들 교육을 위해 맞벌이를 시작했다. 길순 할머니는 섬유공장에서 선별작업을 했고, 희석 할아버지는 농사, 토목공사 일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13년 전에 옛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도시 나가봐야 돈벌이도 없고 맨날 아파트 천장 바라보는 것밖에 더 있겠나요. 시골 와서 사는 게 어설퍼도 마음은 편해요. 본 토박이니까 아는 이웃들도 많고요.”


그렇게 돌아온 옛집에서 부부는 능숙하게 살림살이를 도맡고 있다. 희석 할아버지는 산에서 나무를 해 와서 통장작을 팬다. 또 할아버지에게 아궁이에 불 지피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길순 할머니는 밭일부터 해서 온갖 집안일을 한다. 말끔히 잘 정돈된 집안 곳곳에서 할머니의 부지런함이 보인다.


집에 사람이 안 살고 내버려 두면 허물어져요. 사람이 발로 밟고 다져야 숨을 쉬나 봐요. 사람한테 나오는 훈김(훈훈한 기운)이란 게 대단하죠. 흙벽에 있는 지푸라기는 흙이랑 서로 얽히고 설켜서 집을 따뜻하고 튼튼하게 만들어주고요.”



흙과 지푸라기가 엉겨 붙은 세월만큼 삶을 함께 한 부부. 오랜 시간 동안 곁을 지켜온 두 사람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하고 수줍게 미소를 띠는 모습도 닮았다. 이들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지금이 제일로 좋죠. 애들 다 갈쳐놓고 키워놓았으니까요. 마음은 편안하니 좋은데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문제죠.”


같은 질문에 서로 같은 대답이었다. 흙집을 다른 곳에 팔 생각이 있는지도 물었다.

절대 안 팔죠. 돈은 금방이면 없어지는데 집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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