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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돌마을의 만추] 이창복-차점녀 부부2020-11-12

[선돌마을의 만추] 이창복-차점녀 부부

우리의 하루하루는 언제나 꽃날

혼인하던 날 서로의 얼굴 기억… 표고버섯-곶감농사로 살아와


코끝이 차갑던 지난 11월 어느 평일 오후 3, 입석마을 골목길에서 걸어 나오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1995년 대아댐 건설로 단지마을이 수몰 된 이후 입석마을에 정착한 이창복(83) 할아버지다. 그는 입석마을은 저쪽에 산을 보면 선돌이 있어. 그래서 입석마을이 된거여라고 설명하며 동네 한 바퀴를 함께 돌며 소개해주신다.



끓고있는 가마솥 안에 염소고기가 들어있다


마침 마을회관에서 1분 거리에 위치한 이 할아버지의 집에는 펄펄 끓는 철 가마솥 앞을 지키는 아내 차점녀(78) 할머니가 있었다. 마당에는 널어놓은 서리태가 있었고, 그 오른편에는 가지런히 정리된 농기구가 있다. 낡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부가 지금까지도 농사를 손에 놓지 않았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이미 불을 땐지 오래된 듯 솥뚜껑 사이로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난다. 차 할머니는 부지깽이를 들고 불을 이리저리 뒤적인다.

염소여 염소. 지난번에 우리 아들이 가져다 줬는데 오늘 저녁에 국 끓여먹으려고.”

염소고기를 처음 요리해본다는 할머니는 펄펄 끓는 솥을 보며 작게 말했다. “어떻게 맛이 있을랑가 모르것네. 맛 없어도 그냥 먹어야지 어떡혀.”

기독교 집안에서 나고 자란 두 어르신은 1962년 이 할아버지 먼 친척의 중매로 학동마을에 살던 차 할머니와 혼인했다. 결혼 후 슬하에 22녀를 두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이 할아버지는 지금도 동네에 있는 수만교회 장로를 맡고 있다.



부부는 혼인하던 날 서로의 얼굴을 처음 보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할아버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결혼할 적 남편의 어디가 좋았는지를 물었다. 할머니는 어디가 좋은지는 몰라. 좋으니까 살지. 생긴 것도 좋고 그냥 사는거여하며 괜히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친다. 곧 자리로 돌아온 이 할아버지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본다. 그는 할머니가 예쁘고 좋으니까 같이 살지하며 미소 짓는다.

부부는 결혼식 날 처음 봤던 그때처럼 수줍게 웃기만 한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만큼 서로를 잘 이해하는 그들이다. 서로에 대해 물으면 어색한 듯 머뭇거리다 칭찬하는 말 한마디씩을 던진다.

우리 할머니가 요리를 잘해서 다 맛있어. 가장 맛있는 거 고르라고 하면 못 골라.”



한평생 농사를 지어 온 부부는 표고버섯과 곶감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농사를 많이 짓다보니 이제 웬만한 작물은 어렵지 않게 기를 수 있다. 살아오면서 특별히 힘든 일이 없었다는 차 할머니가 표고버섯 기르는 법에 대해 일러준다.



나무를 잘라서 기계로 구멍을 뚫고 줄을 쳐서 통나무를 세워. 그라고 버섯을 구멍에 심어서 1년 지나고 버섯이 다 자라믄 차가 와. 버섯 사가는 트럭이 오면 팔면 끝이여.”

마당에 유독 큰 통 3개가 눈에 띈다. 이 할아버지가 뚜껑을 여니 시큼한 식초냄새가 코를 찌른다. “감식초여, 작년에 담아서 올해 이거 납품만 하면 돼. 감식초에 쓰는 감은 무른 거 말고 단단한 땡감 써야돼.” 올해 곶감농사가 잘 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을 감식초가 달래준다.

큰 통과 농기구 외에도 집안 곳곳에 화분이 가득하다. “이것도 아들이 준건데 블루베리 나무여. 우리 할아버지가 화분을 좋아해.” 꽃을 좋아한다는 걸 증명하듯 집 입구에도 국화, 상사화, 맨드라미 등 색색의 꽃들이 만개했다.

부부는 집 앞의 꽃을 보며 입을 모아 말했다. 평생을 함께 살다보니 취향도 이제 비슷해졌다.

제일 좋아하는 거 고를게 뭐있나. 우리는 꽃은 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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