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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목 이웃사촌] 미소가 예쁜 김영환 할머니2020-09-14

[다리목 이웃사촌] 미소가 예쁜 김영환 할머니

하얀 집에 사는 '86살 소녀'


꽃집이라 불릴 정도로 화단 예뻐

 

미우나 고우나 50년 세월을 함께 살았네.”

천주교해월리피정의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위치한 하얀 집에는 깔끔하고 소박한 마당이 있다. 이곳에서 25년째 살고 있다는 김영환(86)할머니를 만났다. 나란히 놓여있는 화분과 화단의 꽃들이 눈에 띈다. “내가 꽃을 좋아해서 어디 여행 갔다 오면 꽃씨를 하나씩 받아서 화단에 심었어.” 다리목마을에서 할머니의 하얀 집은 유명한 꽃집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고향 충남에서 서른한 살이 되었을 무렵 전주로 이사와 셋방살이를 전전하다가 우연히 마을에 산 관리인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남편과 함께 다리목마을로 오게 됐다. “남편이 죽고 중간에 아들 집에서 3년 살다가 왔어. 마을이 인심 좋고 살기가 좋아.”

도란도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할머니는 문득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무남독녀 집안에서 태어난 딸이 혹여 외로울까 같은 동네 살던 꼬마를 의동생 삼으라던 부모님 말씀에 친하게 지내던 꼬마는 시간이 흘러 입대를 하게 되었다. “우리 영감님이 한국전쟁이 끝나고 이북에 가족들을 두고 월남을 했는데 마땅한 친구도 없어서 동생이랑 성이 같으니 친하게 지내던 모양이야.”

휴가철이면 늘 함께 고향에 내려올 정도로 각별했던 두 사람은 휴가를 올 때면 빈손으로 오는 일이 없었다. “영감님은 이북사람이라 휴가를 오면 돈을 쓸데가 없으니까 동생네 집에 담요, 비누 같은 거랑 돈도 가져다 줬지. 바리바리 싸오니까 마을에서 그 군인 왔다면서 소문이 났어.” 의동생의 친구였던 군인은 양계장, 양돈장을 운영 할 만큼 많은 지원을 했지만 동물들이 전부 폐사했다. 마지막으로 축사를 지원했지만 그마저도 두 마리만 남게 되었다.

어느 날 봄, 할머니가 집 앞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집에 손님이 찾아왔다. 의동생 아버지와 소문의 군인이었다. 그 군인이 냇가에서 빨래를 하던 할머니를 내려다보고는 조심스레 옆으로 다가왔다. “빨래하는데 손수건이 하나 떠내려가잖아. 그래서 그 사람건가보다 하고 얼른 건져서 두 손으로 물을 꼭 짜서줬지. 근데 대뜸 내 손을 잡는 거야. 놀래서 손을 뿌리치고 빨래 방망이도 내던지고 방으로 얼른 들어갔어. 어머니가 그러더라고 나랑 결혼할 사람이라고.” 할머니는 결혼할 상대가 손을 잡았던 그 군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의동생의 가족들은 미안함과 고마움에 좋은 짝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을까. “처음 봤을 때 마음에 안 들었어. 키도 크고 훤칠했는데 좀 무섭더라고. 동생네 소 남은 두 마리 중 하나 팔아서 나랑 영감님이랑 결혼시켰어.”

돌아갈 곳 없었던 남편과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생활은 안정되었고 자녀들 또한 잘 자라주었다. 이북에 남겨둔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술을 달랬던 탓에 할머니를 힘들게도 했지만 미우나 고우나 같이 산 세월이 50년이다.


할머니가 둥글고 예쁘다며 모아둔 기러기 알들이다


할머니가 한참을 할아버지와 만난 이야기를 들려주시더니 이제는 마당 소개를 해주신다며 손짓 하신다. 화단 근처 화분 안에는 정체모를 하얀 알이 가득했다. “기러기 알인데 아는 사람이 가끔 두어 개씩 가져와. 이런 건 동그라니 바라만 봐도 예쁘잖아. 알공예 하는 사람 있으면 주려고 속을 비워내고 껍질만 모았어.” 말씀하시는 내내 할머니는 열여섯 소녀처럼 환히 웃었다. 하얗고 둥근 기러기 알만큼 할머니의 미소도 참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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