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의 완주이야기 70] 비봉면 이전리(泥田里) 국회의원 나왔다2020-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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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면 이전리(泥田里) 국회의원 나왔다.
이전리! 6월 기후와 땅이 좋아 논·밭곡식이 푹푹 잘 자란다. 비봉면은 대체로 ‘와이(Y)자’ 지형으로 ㉠지역에 봉산·소농·내월 ㉡지역은 대치리 ㉢지역은 백도·수선·이전 이렇게 7개리이며, 여기 이전리는 조선시대 고산현 북면(北面)이었다. 이전리는 첫째, 물이 서에서 동으로 흘러(東流水:동류수) 명당 제1호에 든다. 둘째,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져 일조량이 많으며 셋째, 질 좋은 ‘진흙’ 지역이라서 마을 이름이 이전[泥田:진흙 밭(논)]리이다. 그런데 상용어 중 ‘이전투구(泥田鬪狗)’가 있고, 이전투구는 그리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기에 주민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란다.
스트레스를 좀 받아야 긴장하며 이를 벗어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념 속에서 제3∼4대(1954∼1960년) 이존화(李存華:1914∼1964년) 민의원을 배출시켰으며, 이 의원의 다툴지 모르는 행적 새긴 청렴추모비(淸廉追慕碑)가 마을 앞 큰길가에 있다. 그 청빈성이 어느 정도냐면 자기나 가족 이름으로 된 땅 한 평, 집 한 채 가져보지를 못했다.
이 비석은 후배 류기정(柳琦諪:1922.1.6.~2010.1.4.) 국회의원의 협조로 세웠다. 이존화 의원은 재임 중 ‘수선(水仙)저수지’를 막아 그 혜택이 수선·이전리는 물론이고 화산면 와룡리까지 뻗쳐나간다. 이 지역의 귀중한 고적은 ‘이전(泥田) 산성(山城)’이다.『신증동국여지승람』전라도 고산현편 기록이다.
“【창고】 ‘읍창(邑倉)ㆍ산창(山倉)’ 두 곳이 있는데, 산창은 ‘비봉산성(飛鳳山城)’에 있다.” 여기 ‘비봉산성’이 바로 ‘이전산성’이며, 나무가 자라서 그렇지 성터가 완연하다. 완주가 제 모습을 점차 갖춰가니 문화단체와 행정 당국이 손을 맞잡고 지표 조사라도 서둘러 해두면 으뜸도시 지향에 금상첨화로서 온전한 군정(郡政)이랄 수 있다.
특히 11인 군의원은 이런 면에 착안하여 학술분야까지도 올바르게 이끌어나가면 군민의 믿음이 더 높아질 것이다. 고산현 고지도(古地圖)마다 현청(縣廳) 북쪽 산을 ‘비봉산(飛鳳山)’이라 표기해 두었다. 여기 고개는 비안치(飛雁峙)이고, 지금 우리네가 부르는 ‘누운기러기재(눈기러기재)’로 시내버스가 넘나든다. 이전·수선리 주민 중 일부는 예전부터 행정구역 고산면 편입을 반대하지 않는다. 이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은 고산초등학교에 다닌다. 1930년대 말까지 화산에서↔고산으로 이어지는 지방도 직통로가 취련(翠蓮) 앞을 지났다. 제대로라면 이전리와 종리를 잇는 길을 어서 넓혀야 하는데 행정구역이 달라 진전이 없다. 물레방아가 있었던 돌모롱이 셋집 메는 사라지고 빈터에 잡풀만이 무성하다.
이 마을 국진호 씨는 논 107 두락을 지은 부자였으며, 그의 형 국태호 씨는 겨울철 총을 메고 사냥 다닌 멋쟁이였다. 근래 소 축사와 지렁이· 굼벵이를 기르는 농가 있다. 옛이름 ‘진밭실’, ‘쇠노실’ 매력 있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