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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장의 팔뚝으로 돌아가는 하얀풍차2020-06-12

김관장의 팔뚝으로 돌아가는 하얀풍차



상관면 김광수씨의 하얀풍차과자점

 

햇볕 좋은 날 화분에 물주기, 선선한 오후에 자전거 타고 산책하기, 등받이가 긴 의자에 앉아 책을 읽다가 잠들기. 이런 것들은 나에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들이다. 나의 소확행중에 빠뜨릴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빵집에서 쟁반을 들고 맛있는 빵을 고르는 일이다. 빵을 골라 담는 그 잠깐 동안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풍요로운 사람이 된다. 빵집도 기왕이면 좀 오래된 동네빵집이면 더 좋다. 품목이나 포장지 디자인은 프랜차이즈 빵집에 비하기 어렵지만 직접 반죽해 만든 빵을 그날그날 구워 파는 동네빵집의 구수한 냄새가 나는 더 정감 있어서 좋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빵집도 그리고 골목골목 자리 잡고 있는 동네빵집들도 각자의 이유들로 상황이 만만치가 않다.


 

운동좋아하는 김광수씨 작업장 뒤쪽에는 글러브와 샌드백이 상징처럼 걸려있다.


스무 살에 친구 소개로 풍년제과 본점에서 일을 배웠죠. 전에는 풍년제과 지점이 참 많았어요. 여러 지점 돌아다니면서 경력 쌓다가 전주 안골점에서 공장장을 한 3년 했어요. 그 풍년제과가 지금은 파리바게트로 바뀌었죠. 지나고 나니까 제가 풍년제과 전성기를 함께 한 거죠. 수능 때는 전쟁 통이었어요. 밤새도록 찹쌀 반죽해서 모찌를 만들었어요, 예전에는 명절 때 롤케익 선물을 많이 했거든요, 그럴 때도 호황이고 크리스마스는 말도 못해요. 그때 케잌 팔아서 1년 먹고 산다는 말도 있었으니까요. 다 옛날이야기죠. 예전에는 미팅한다고 하면 빵집에서 빵이랑 우유 먹으면서 만나고 그랬잖아요. 지금은 만날 데가 천지인데 누가 빵집에서 만나요. 그때는 빵이 거의 유일한 간식이었어요. 특별한 날 빵집에서 빵을 사고 그랬던 시기였죠. 그 당시 제과점하던 선배 형들이 이삼층 되건물을 가질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망하면 다행이더라고요.”

 

나는 밀가루 반죽하는 막노동꾼

김광수(47) 사장님은 상관면 지큐빌 아파트 앞에서 15년째 동네빵집 하얀풍차과자점를 운영하고 있다. 임실이 고향이고 전주에서도 잠깐 생활했지만 사장님은 상관에서 이십년 째 살고 있다. 빵집 이름이 참 정겹다. 예전에 유럽에서는 풍차를 이용해 밀을 빻았고 밀가루는 하얀색이니 자연스럽게 하얀풍차가 되었고 이 이름은 아내가 지었다고 한다. 스무 살 때부터 빵 만드는 일을 시작했으니 3년만 더하면 30년 빵 인생을 사는 것이다. 이제는 빵 만드는 일이 좀 쉬워졌을 법도 한데 이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어렵고 고된 일이라고 한다.





고향 임실에서는 농사를 지었죠. 고등학교는 공고를 나왔어요. 기계를 만지게 될 줄 알았는데 정 반대 일을 하게 된 거죠. 제가 밀가루를 만지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새벽에 나와서 저녁 10시까지 버텨야 하니까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에요. 혼자 하다보니까 아침에 늦게 나와서는 일을 다 못해요. 그러니까 저녁에 내일 만들 빵 재료들을 다 준비 해놔야 해요. 제고도 체크해야지 빵 만들어야지, 도무지 시간이 안나요. 그래도 오후 4시가 되면 잠깐 짬을 내서 면사무소 헬스장으로 가요. 체력을 유지하려고 서른 살부터 운동을 했어요. 트레이너 자격증도 있고 아내랑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도 땄죠.”

 

그러고 보니 빵집 사장님 팔뚝이 예사롭지 않았다. 면사무소 헬스장에서는 워낙 꾸준히 운동을 하는데다 함께 운동하시는 동네 어르신들 자세도 봐주고 하다 보니 사장님을 김관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가게를 내고 처음 몇 년 동안은 명절날 빼고 쉬는 날도 없이 일을 하며 빚도 갚고 집도 마련했지만, 지금은 그렇게 일해야 될 만큼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좀 더 건강하고 길게 빵 만드는 일을 하려면 운동도 하고 쉬어가며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종업원을 두지 않고 아내와 둘이서 일할 수밖에 없는 동네빵집 사장님은 애환도 있었지만 자부심도 남달랐다.

 

빵집에 들어가면 아기자기하니 별로 힘든 일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매장 뒤쪽 작업실은 달라요. 막노동의 현장인거죠. 공사장에서는 시멘트를 주무르고 나는 밀가루를 주무르는 거죠. 밀가루 만지는 막노동꾼이에요. 그래도 내 빵은 내가 만든다는 자부심은 있어요. 이쪽 업계에서는 동네빵집을 윈도우라고 해요. 브랜드 제과점에서 일을 시작하면 반죽하는 기술을 못 배워요. 완제품이 본사에서 내려오면 그걸 오븐에 구워서 내면 되니까요. 윈도우에서 일을 배운 사람들은 모든 작업을 다 수작업으로 하는 거니까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어요. 힘은 들지만 마진율은 좋죠. 대신에 욕심을 부릴 수가 없어요. 혼자서 다 손으로 하는 작업이다 보니까 많이 만들 수가 없는 거죠.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면 좋은데 제가 만들 수 있는 만큼 하루하루 만드는 거죠. 혼자 하는데 내 하루 일 양이 10만원이라고 하면 그만큼만 만들어야지 20만원 어치를 만들 수는 없잖아요.”



 

추를 달아서 이용하는 저울. 20년 동안 고장 없이 사용하고 있으며 현재도 식빵 반죽 무게 달 때 사용하는 저울이다.


사장님 말대로 사람들 입맛도 빠르게 변하고 지금은 예전보다 먹을거리가 훨씬 많아졌다. 치킨도 있고 피자도 있고 편의점에 가면 별의별 먹을거리들이 한 가득이다. 그래도 곱게 빻은 밀가루에 계란과 우유를 넣어 힘껏 반죽하고 밤새 향긋하게 숙성된 반죽을 오븐에 넣어 구워낸 신선한 빵을 대신할 음식은 많지 않다. 도시에서는 몇 년 전부터 소소한 동네 빵집 붐이 일어 새로운 종류의 빵들을 만들어 팔고 있다. 김광수씨도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해서 판매하는 시도를 몇 번 해보았지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15살이 된 하얀풍자과자점의 효자노릇은 앙꼬빵과 소보로빵이 도맡아 하고 있다.

 

오래된 동네빵집은 사랑방이다

육학년 때부터 드나들던 꼬마 아이가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청년이 되어서도 사장님을 삼촌이라고 부르며 빵을 사러 온다.

다들 힘들겠지만 요즘 코로나 때문에 더 힘들어요. 전 같으면 한일장신대나 초등학교, 중학교, 관공서에서 단체 주문도 제법 들어올 때인데 개학도 안하고 행사도 안하니까 주문이 많이 줄었어요. 그래도 단골손님들 보고 장사합니다. 동네 사람들을 많이 알죠. 쟤는 이렇게 수시로 잘 놀러 와요. 쟤네 이모, 삼촌, 고모 온 집안 식구들 다 알아요. 빵 사러 오시는 손님들이 이웃이기도 하고 오랜 단골손님들이죠. 우리 집처럼 이런 동네 빵집은 직접 다 만드니까 손님들도 이것저것 먹어봐도 우리 집 식빵이 쫀득하니 맛있다고 그래요.”

 


어린이 시절부터 빵사먹으러 놀러오던 이웃들이 청년이 되어서도 빵을 사러 온다.


매장 위쪽 선반에는 이탈리아산 에스프레소 커피 용기가 줄지어 진열되어 있다. 꾸준한 운동으로 팔 근육을 키우고 짬 내서 맛있는 커피를 내려 마시는 사장님의 느긋함은 어쩌면 더 오랜 동안 커다란 하얀 풍차를 돌릴 수 있는 힘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로 힘든 나날이지만 일상이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아침 7시 즈음이면 그날의 첫 빵이 나온다. 동네 사람들이 일어날 때쯤 구수한 빵 냄새가 풍길 것이다. 풍차 돌아가듯 이 일상이 계솔 돌아가기를.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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