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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별곡]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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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연휴 '벼농사'에 헌납했지만 마음은 뿌듯


길면 엿새나 되는 5월의 황금연휴가 지났다. 사실 농사꾼에게는 달력에 박힌 빨간 날이 별반 의미가 없다. 농사라는 게 원리를 따져보면 작물(가축)이 주인이고, 농사꾼의 스케줄은 그 생육주기에 따를 수밖에 없는 탓이다. 그래도 직장인들과 함께 시골공동체를 이루고 살다 보면 요일이나 공휴일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더욱이 우리 고산권벼농사두레 구성원은 다수가 직장인이니 그럴 밖에.

그런데 두레 회원들 다수는 이번 황금연휴를 벼농사 초반작업에 몽땅 헌납한 꼴이 되었다. 미안함이 앞서지만 벼의 생육주기로 보면 이 때가 볍씨를 담가 못자리에 앉히는 적기이니 어쩔 도리가 없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사고까지 생기는 바람에 초반작업은 연휴 첫날인 30(부처님 오신 날)에 시작해 마지막 날인 5(어린이 날)까지 엿새 만에 마무리됐다. 물론 작업날짜는 징검다리 마냥 사흘뿐이었지만.


애초 계획에 따르면 426일에 볍씨를 골라 나흘 동안 냉수침종한 뒤 30일 모판에 파종하고, 3일 못자리에 앉히는 일정이었다. 그런데 30일 파종작업을 앞두고 일이 벌어졌다. 촉이 튼 볍씨를 작업에 알맞도록 펴서 말리는 과정에서 물정을 잘 모르는 새내기 회원이 찰벼와 메벼를 섞어버린 것이다. 볍씨를 쓸 수 없게 되었으니 파종작업은 물 건너가고 대신 급하게 씨나락을 구해 소금물로 볍씨를 고르는 염수선을 다시 할 밖에.

그나마 연이틀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바람에 볍씨는 짧은 기간에 촉이 터 사흘 뒤인 3일 파종을 할 있게 되었다. 다시 파종기계를 실어와 설치하고 시운전까지 마쳤다. 비가 내리리란 예보에 따라 미리 비가림 천막을 쳐두었고, 볍씨도 일찌감치 건져내 그늘에 널어두었다.

실제로 오전 일찍부터 제법 굵은 비가 쏟아졌다. 그래도 철저히 대비를 해 둔 덕에 작업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사람들도 스물 넘게 몰려들어 북적거렸다. 오디오에서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작업자들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어깨춤을 덩실대기도 했다. 아흔 마지기에 심을 2천판을 넘는 모판에 볍씨를 넣기 위해서는 아침 7시에 일을 시작해야 했고, 오후 5시쯤 모두 끝났다. 물 분사기로 흠씬 적신 모판은 트럭 짐칸에 차곡차곡 쌓여 이틀 남짓 숙성을 거친다.


이윽고 5, 초반작업 대미를 장식하는 못자리 만들기. 거칠게 로터리를 쳐놓은 논배미에 물을 대서 고랑을 파고 두둑을 가지런히 다듬은 뒤 그 위에 모판을 앉히는 작업이다. 일꾼이 많으면 많을수록 일이 빨리 끝나게 돼 있다. 그래서 이 날은 해마다 사람이 얼마나 모일지를 두고 노심초사하게 된다.

올해는 예상을 훨씬 넘어 서른이 넘는 사람이 작업에 참여했다. 어린이 날인데도 부모를 따라 나선 아이들도 열 명 남짓. 어린 축은 바로 옆 딸기밭에서 딸기 따먹는 재미에 푹 빠졌고, 초등학교 고학년들은 나름 일손을 돕겠다며 모판 릴레이 운송대열에 끼었다. 작업 진척도가 화살처럼빠르다. 부직포를 덮는 것으로 모든 일이 끝난 게 오후 4. 유례없이 이른 시간이다.

일손이 넘쳐나니 아등바등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들판에 여유가 넘친다. 이건 차라리 잔치판이다. 오전 오후 새참을 꼬박꼬박 챙기고, ‘막동이’(두레 산하 막걸리 빚기 동아리)가 준비한 막걸리에 얼큰해지면 힘도 나고 신도 난다.

농작업은 사실 거칠고 고된 일이다. 그래도 이렇듯 여럿이라면 일과 놀이가 하나이고, 농사와 잔치가 어우러지는 경지를 맛볼 수 있다. 이야말로 두레의 진면목 아닐까 싶다.


/차남호(비봉 염암마을에 사는 귀농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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