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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엄마, 고산우체국 권애경2020-05-12

고양이엄마, 고산우체국 권애경


양이야, 밥은 먹었니?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던 아기고양이를 본 순간부터

 

나는 길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을 틈틈이 관찰한다. 검은색 고양이, 노란색 고양이, 삼색 고양이를 보면서 저 고양이는 어떠한 사정과 행로를 거쳐 지금 여기에 있을까 상상한다. 한 고양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적어도 무작정 혐오하기는 어렵다. 누구라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서로 아무런 삶의 연결고리가 없을 때 더 쉽게 혐오하지만, 서로의 삶이 한 자락이라도 섞이면 이해하고 공감할 여지는 꼭 생긴다.”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에 쓰여 있는 한 문장을 살짝 바꿔봤다. 고양이를 사람으로 바꾸면 은유의 글과 같아진다. 고산우체국에서 근무하는 권애경씨(49)가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고 돌봐주기 시작한 것도 한 고양이를 가만히 들여다 본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발이 없는 고양이를 위해 만들어 놓은 고양이 아파트에서 밥을 주고 있는 애경씨.


어느 날 어떤 아기 고양이가 나한테 와서 잘 따르더라고. 목줄이 있는 길냥이였어. 안기더라고. 뭐라도 줘야겠다 싶어서 밥을 챙겨주다 보니 그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또 그 새끼가 새끼를 낳고 몇 대를 걷어 먹이고 있지. 그때 시작된 인연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 그런데 나 말고도 먼저 챙겨주고 있는 언니가 있더라고. 나도 몰랐는데 어느 날 밥 주러 가면 내가 챙기지 않은 밥이 있는 거야. 나중에 알고 보니 삼례우체국 앞에 옷가게(이구아나) 언니가 고양이 밥을 챙기고 있더라고. 서로 좋은 사람인 것을 알아보고 그랬던 거지. 고양이가 연결해준 좋은 인연이야.”


 



권애경씨는 반려견 6마리, 반려묘 4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물론 남편과 아들 둘도 함께. 처음부터 동물들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큰 아들 성화에 못 이겨 첫 번째 반려견을 키우게 됐을 때만 해도 너무 성가셔서 작은 방에 가뒤놓고 키웠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어린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게 됐고 그것은 너무나도 작은 연결고리였지만 결국 큰 변화를 일으키는 마술이 되어서 지금의 고양이 엄마의 삶을 만들었다. 고양이 엄마로 사는 것은 생각보다 고단한 일이다. 배고픈 길고양이들이 눈에 밟혀서 밤낮으로 챙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느 곳에나 동지는 있는 법, 권애경씨에게도 도처의 고양이 엄마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우체국에서 근무중인 권애경씨


“201811월에 발령받아서 고산우체국으로 왔지. 어느 날 요 앞 방범초소를 지나는데 애옹애옹 아기 고양이 소리가 들리더라고. 너무 예쁜 거야. 뭐 먹고 사나 하고 며칠은 그냥 다녔는데, 어느 날 보니까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고 있더라고. 그때 밥을 주기 시작한 거지. 그 근처 식당 입간판 밑에다가 밥을 챙겨 줬지. 그러다가 비 맞지 않게 방범초소 밑으로 슬쩍슬쩍 옮겨놓았는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지. 근데 방범대장님께 허락 받고 거기다 놓기 시작했어. 누가 뭐라고 하면 대장님이 줘도 괜찮다고 했는디요그래 버리면 되는 거지. 2019년 겨울쯤에 무발이를 만났어. 흰 고양인데 뒷발만 남아있고 앞발이 없었어. 어쩌다 그렇게 된 건지는 몰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으니까. 그 친구 이름을 무발이라고 지어준거지. 밥을 주기 시작하니까 나를 따르더라고. 그러다가 전부터 무발이를 챙겨주던 언니도 만난거지. 서로 이름도 몰라. 그냥 언니동생 하는 거지. 그 언니가 나보다 먼저 무발이를 발견하고 밥을 주는 사람이었는데, 추운 겨울에 집을 만들어다 줘도 안 들어가더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안 들어가. 그래서 몇 개를 더 만들어다 줬어. 집이 여러 개면 그 중에 마음에 드는 한 군데는 들어갈 거 같아서. 집에다가 우산도 달아줘서 비 피할 수 있게 해놨지. 그때서야 집하나 골라서 들어가 앉아 있더라고. 그 후에 몇 마리가 들어와서 살더라고.”

 

열아홉에 임시직부터 시작해서 스무 살에 전주우체국에서 정식으로 근무하기 시작한 권애경씨는 하루가 너무 짧다. 고산우체국에서 여섯시에 퇴근하면 근처 고양이들 밥을 챙겨주고 일곱시엔 삼례 공용주차장으로 가서 그곳에 사는 고양이들 밥을 챙겨주고 집에 가면 여덟시가 훌쩍 넘는다. 청소하고 씻고 밥 먹고 나면 열한시가 넘어야 발 뻗고 쉴 수 있다고 한다. 고양이 엄마의 일과는 주말에도 연휴에도 쉼 없이 이어진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고양이 삼사십 마리를 먹여 살리려면 사료 값도 매달 오십 만원이 넘게 든다. 그래도 그녀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한다. 지금은 너무 바쁘고 시간 내는 것이 어렵지만 언젠가 퇴직하게 되면 지금보다 더 여유롭게 고양이들을 돌보고 싶다고 한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고양이 엄마들의 사회적인 연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바쁠 때 서로 품앗이를 해가며 돌보게 되면 엄마들에게도 고양이들에게도 더 좋은 일이니까 말이다.


 

아픈 고양이에게 약을 섞어 특별식을 만들고 있다.


내년이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나지. 삼례나 봉동으로 가게 될 거 같은데. 걱정도 되지. 발령나는 곳마다 거기에 있는 길고양이들 챙기게 생겼으니까. 아무래도 육체적으로 힘들겠지. 지금은 전주, 삼례, 고산 이렇게 챙기고 돌아다녀. 가는 곳마다, 어딜 가나 길에 돌아다니는 동물들 밥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서 내 마음이 놓이기도 해. 챙겨오던 애들이나 잘 챙기고 싶어. 퇴직하면 고양이들 밥 주러 돌아다니는데 시간을 많이 쓰고 싶어. 지금은 퇴근하고 챙기느라 정신이 없거든. 좀 여유롭게 애들을 보살피고 싶어. 집에 같이 사는 아이들도 도통 놀 시간이 없으니까 강아지들이랑 산책도 자주 다니고 싶고. 그런 일상을 살고 싶은 거야. 내 건강을 위해서라도.”

 

사실 나도 고양이 엄마의 삶을 살고 있다. 같이 사는 고양이도 있고 밥과 잠잘 곳을 내주는 길고양이 친구들도 있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건 칠년 전이다. 가게 뒤 안에 나타난 까만색 작은 고양이가 시작이었다. 곁을 주진 않았지만 도망가지도 않고 1미터 거리를 두고 가만히 앉아 나를 살피는 눈치였다. 그 아이에게 고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밥을 주기 시작했다. 고산이는 그 후 여자친구를 데려 와서 놀기도 하고 몇 마리의 고양이를 더 데리고 왔다. 아무래도 밥 주는 만만한 인간이 있다고 소문을 낸 모양이다. 그렇게 시작된 길고양이의 인연. 그 후 치즈, 치자, 줄줄이, 여동생 등 많은 고양이들이 오고 가곤 했다. 추운 겨울 차갑고 딱딱하게 식어있는 어린 고양이들을 묻어 주곤 했는데, 어느 때 부터인가 고양이들 이름 짓기를 멈추게 됐다.


 



골목길을 걸을 때면 시선이 늘 아래를 향하게 된다. 누군가 챙겨놓았을 사료 그릇들을 보면 그 동네와 사람들이 좋아진다. 고양이들은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귀여운 존재들이다. 큰 동작을 하지 않고 천천히 쪼그려 앉아 멀찍이 있는 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양이들은 조용히 눈을 맞춰준다. 평화로운 순간이다. 밥을 내주고 잠 잘 곳을 마련해주면 참 고맙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그냥 그들이 지나가는 데로 그들이 살고 싶은 데로 그대로 가만히 들여다 봐주면 참 좋겠다. 우리가 사는 마을 어느 곳에서나 고양이들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우리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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