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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이 예쁜 시평마을] 백남식 어르신2020-05-12

[돌담이 예쁜 시평마을] 백남식 어르신


백남식 어르신은 마을에서 창을 잘하기로 소문났다. 직접 창을 불러주셨는데 그 솜씨가 대단했다.



매일 밭에서 구성진 창 한 가락

 

18세 때 징집돼 하동서 군사훈련

돌아와 보니 부모님 다 돌아가셔

 

굽이진 도로를 따라 거인마을을 지나 낮 11시쯤 시평마을로 들어섰다.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만개한 산 벚꽃이 참 예뻤다. 우리는 마을에서 나고 자라 가장 오래 사신 백남식(88) 할아버지를 만났다. 살면서 밭일을 손에 놓은 적이 없는 할아버지는 아침 730분이면 대개 집에서 조금 떨어진 밭으로 향하신다. 살아오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하자 집으로 안내하신다.

 

이월순(85) 할머니가 작은 쟁반에 김이 나는 커피를 내온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살아오면서 싸웠던 적이 있냐는 물음에 할아버지는 싸우지 않지라며 대답했지만 말이 없는 할머니 모습에 함께 웃음이 터졌다. “살면서 의견이 안 맞을 때는 있었어도 크게 싸우지는 않았어. 그때는 얼굴도 안보고 결혼하는디 좋은지도 모르고 그냥 사는 거여.” 전주에서 살던 할머니의 부모님이 착하고 성실하다는 할아버지에 대한 소문을 듣고 결혼을 진행했다. 농사를 지으며 5남매를 길러낸 노부부는 지금도 부지런히 밭에서 농사를 짓는다.

 


할아버지는 6.25 참전용사다. 당시 기억을 더듬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18세가 되었을 무렵 6.25가 터졌고 진안 부귀면 궁항리로 피난을 갔다. 그 당시 군사모집을 위해 마을에서 청년들을 데려갔는데 할아버지도 피할 수 없던터라 가족을 두고 경상도 하동군으로 떠나야만 했다. “가서 총 쏘는 걸 배웠어. 주로 싸우는 거를 배웠지. 그때는 점심이라고 밥도 한 사람 몫으로 흰쌀밥만 뭉친 주먹밥 하나를 줬어.” 할아버지는 하동에서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오니께 우리 뒷집 할머니가 버선발로 뛰당겨오는겨. 나를 부둥켜안으면서 야야 큰일났다. 느그 엄니랑 아부지 싹 잡아가서 죽였다. 이런 게로 그렇게 놀랄 수가 없었어. 그때는 큰 이유도 없이 반동분자라고 동상면 사람들을 많이 죽였어. 내 우로 형 하나 동생들 넷이 있는데. 부모님이 그렇게 돌아가셨지.” 할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진천리 구수마을에서 전투했던 장면이 남아있다. 함께했던 전우들은 지독한 전쟁의 후유증으로 불구가 되거나 아픈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고 일을 해야 하는데, 마땅히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동상에서 군인으로 근무하던 형과 역할을 바꿔 남은 동생들을 형이 돌보고 할아버지는 마을에서 참전용사로 생활을 이어가다 휴전을 하게 되었다고.


 


할아버지는 마을 내에서 창을 잘하기로 소문나있었다. 쑥스러운 듯 너털웃음으로 마을마다 끼가 충만한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풍물패를 만들었다. 사람들에게 천한 것, 상것이라고 천대를 받았지만 재주만큼은 좋았다고. 할아버지는 일하러 나가면서 그 소리를 듣고 얼추 따라한 것이라고 했다. “그럼 부를 테니까 한번 들어봐구성진 가락으로 심청가를 뽑아내는데 역시 소문대로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이 인심이 좋으니께 쌀이나 삯을 좀 주거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자주 왔지. 소리도 뜻을 알아야 재미있는 거여 모르면 아무 재미가 없어.”

할아버지는 마을이 이렇게 변한 걸 보면 참 신기하다고 했다. 또 그냥 지금처럼 건강하게 이렇게 사는 것뿐 더 바랄 것도 없다고. 함께 마주보는 부부의 모습이 유난히 닮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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