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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이 예쁜 시평마을] 노인회장 윤옥림 할머니2020-05-12

[돌담이 예쁜 시평마을] 노인회장 윤옥림 할머니


 

손수 꾸민 마당 정원에 봄이 한 가득

 

어린 손님 손잡고 마당 안 꽃구경

지난해 심은 접시꽃이 이만치 컸네

 

오가는 사람 하나 없던 조용한 오전, 노인회장 윤옥림(81) 할머니의 집을 찾았다. 대문이 없는 할머니의 집. 그가 손수 꾸민 작은 정원에는 봄을 맞은 화사한 꽃이 가득하다.

이리 들어와서 앉아. 이것 좀 먹을텨? 우리 아들이 사과농사를 짓는데 사과즙도 혀.”

두 손 가득 사과즙을 챙겨주신다. 엊그제 미장원에서 한 파마머리를 빗으며 소녀처럼 환히 웃는 모습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진다.

할머니는 스물한 살이 되었을 무렵, 당시 양 집안과 잘 아는 사이인 약방 아저씨의 중매를 통해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됐다. 고향인 전주에서 차를 타고 이 산골로 시집을 왔던 날이 어느덧 까마득하다.

우리 아저씨가 5대 독자였는데 약방 아저씨가 내가 아들을 잘 낳을 거라고 생각했었나봐. 우리 친정 식구들이 아이를 많이 낳았었거든. 그래서 중매를 서 준거야.”

약방 아저씨의 추측이 맞았는지 할머니는 아들 넷에 딸 둘을 낳았다.

처음에 시집와서 나는 일을 할 줄 모르니께 그냥 청소하고 밥만 짓고 그랬어. 일을 못해서 저녁만 되면 매일 울었어. 누가 구박하는 것도 아닌데 서러워서 그랬지. 새댁이 매일 우니까 마을에서 울보라고 소문났었어.”



꽃을 좋아하는 노인회장 윤옥림 할머니가 돌담 밑 금낭화를 살펴보고 있다.


할머니는 그럼에도 시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아이를 낳으면 꼭 시아버지가 미역을 사오고 시어머니가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미역도 귀한 시절이었지만 며느리 사랑은 식을 줄 몰랐다. 그런 시부모님의 모습에 할머니는 참 감사했다.

우리 시어머니가 천사같았어. 사람이 지나가면 와서 눌은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그랬으니께. 남이 내 흉을 보더라도 우리 시부모님들은 절대 내 흉 안 봤어.”

시간을 되돌려서 젊어진다면 시어머니처럼 남들에게 베풀며 살고 싶다고 말하던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고생했던 날들이 많았어도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늘 좋게 대해주셨던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쯤 나한테 정을 떼려고 하셨던 건지 우리 아저씨한테 야가 내 약을 안 챙겨줬다고 하시더라고. 그러니까 우리 아저씨가 나를 막 혼낸 적이 있어. 그래서 친정 오빠네 집으로 얼른 도망갔지. 친정 오빠랑 서로 힘든 얘기 나누고 부둥켜안고 울었지.”



모두가 함께 어려웠던 시절, 마을에서 고생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드물었다. 마을의 아낙들도 그러했다. 추운 겨울에 얼어있는 도랑을 깨고 빨래를 하면 새빨개진 손이 갈라지고 터서 피가 마르지 않았다.

얼음물에 빨래하면 손이 얼마나 가려운지 몰라. 메밀재로 빨래를 하면 재라서 새까만데 때가 잘 지워져. 메밀재가 아니면 깨를 털고 남은 깨 대를 썼지. 그전에는 나일론이 있었간디. 그거 나오면서 편해졌지.”

할머니는 어려운 시절 이야기라도 웃음이 난다. 옛날이야기를 하던 할머니가 갑자기 마당 구경을 시켜준다며 손을 잡아 이끈다. 꽃들을 직접 심은 할머니의 부지런한 마음을 알아준 탓일까. 지난 가을에 심었던 접시꽃은 벌써 높이 자랐다. 꿀벌들이 분주하게 할머니의 정원에서 날아다니며 꿀을 모은다. 그러고 보니 조그마한 할머니의 뒷모습이 꾀를 부리지 않는 한 마리 꿀벌 같다.

나는 꽃이라면 다 좋아. 계절도 따뜻하고 꽃피는 봄이 제일 좋고.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꽃놀이도 못 갔지만 그래도 이 계절이 제일 좋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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