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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깐하고 오래된 읍내의 국수가게2020-01-10

쪼깐하고 오래된 읍내의 국수가게


30년 소박한 눈인사 친근하여라

쪼깐하고 오래된 읍내의 국수가게

- 봉동 우리국수 문향순씨

    

새벽에 일어나 육수를 끓이면서 장사는 시작된다. 아침부터 간간이 손님이 온다. 국수는 대,,소가 있는데 대부분 중이나 소를 고른다. 엄지와 검지 사이로 국수 양을 가늠하고 끓는 물에 면을 넣는다. 면이 삶아지는 동안 접시에 김치, 고추, 된장을 담는다. 그 사이 밀려있는 그릇들을 설거지 하고, 면이 부르르 끓어올라 냄비 뚜껑이 들썩이면 찬물을 부어 가라앉히고 잠시 벽에 기대어 손님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서둘러 면을 건져내 찬물에 치대듯 헹구어 낸다. 물론 타이머는 없다. 주문한 양에 맞게 국수를 그릇에 담는다. 참기름을 먼저 국수 면에 뿌리고, 파가 송송 썰어진 양념간장과 고춧가루를 순서대로 뿌린다. 마지막으로 이른 아침부터 끓여낸 멸치 육수 한 바가지를 붓고 쟁반에 담아 손님상에 낸다. 30년 동안 봉동 우리국수 문향순씨(71)의 반복된 일이다.


    

"어여와. 오랜만에 오셨구만!" 반가운 음성이 자동재생될 것 같은 미소가 친근한 봉동 우리국수의 문향순씨.


“30년 전부터 이 자리에서 국수를 말았어. 그전에는 아이 낳고 집에서 살림을 했지. 그러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먼저 떠났어. 슬퍼할 겨를이 어디 있어.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어. 처음에는 책 외판원 해보려고 교육을 받았는데 나하고 안 맞더라고. 그리고 운전면허를 따려고 했는데 그것도 책만 들여다보면 잠이 와서 못 땄지. 성경은 아무리 읽어도 안 졸리는데 책만 보면 졸음이 와. 먹고 살려고 이 장사를 시작한 거야.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지. 그냥 나는 하루 벌어먹고 살고 그렇게 소박하게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 내가 뭐 부자 되려고 생각했으면 벌써 가게를 넓혔어야지. 사람은 태어날 때 각자의 달란트가 있는 거야.”


-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단지

 

 


국수집은 조금 낡고 좁았지만 3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느새 단정하고 정감 있는 노포가 되어가고 있었다. 홀에는 테이블 3개가 놓여 있고 혼자 일하기 딱 좋은 작은 부엌에서 문향순씨의 국수 차려내는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서 팔을 뻗으면 닿는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는 가게가 넓지 않으니까 사람들이 띄엄띄엄 계속 와. 장사 시작할 때 아무런 경험이 없어서 이렇게 옹색하게 시작했지. 장사 경험이 없었어. 어디 일 나가서 설거지라도 하고 그랬으면 구조를 잘 만들어 놓고 시작했을 텐데, 집에만 있다가 살림집에다가 국수집을 차렸으니 옹색했지. 지금은 이것도 훌륭하게 된 거야. 전에는 홀 천장이 휘어졌었어. 고양이가 뛰어가다가 천장이 훅 내려앉았지. 그래서 새 걸로 고쳤어. 그리고 벽도 예전에는 흙벽이었어. 흙이 떨어지니까. 쥐도 왔다 갔다 하고. 그래서 천장이랑 벽을 고쳐가면서 장사했어.”


  

- 문향순씨가 담아낸 든든한 국수 한그릇


봉동 우리국수는 사실 지역사회에 제법 알려진 국수집이다. 주로 지역 주민들이 애용하지만 개그맨 양세형도 왔다 가고 축구선수 김남일과 이동국도 다녀갔다고 한다. 가게가 워낙 좁고 사장님 혼자서 일을 하니까 서로 모르는 사람도 스스럼없이 합석을 하고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누게 된다.

국수집은 그래도 쉽게 할 수 있어서 시작했어.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버리는 게 없으니까. 어디서 배워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살림하는 사람이 다 할 수 있는 게 국수니까 시작한 거야. 그래도 처음에는 서툴렀지. 처음에는 아는 동네사람들이 팔아주고 그랬어. 하면서 요령이 생기니까. 처음부터 맛이 있었겠어? 삼십년 하다보니까 요령이 생기고 맛이 들고 사람들이 그 맛 생각나서 계속 찾아오는 거지. 나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교회 갔다가 다섯 시쯤 가게 와서 그때부터 육수를 끓이기 시작해. 두 솥단지는 끓여야 하루 장사하지. 어지간한 손님들은 다 알고 지내. 하도 가게가 쪼깐하고 오래하다 보니까 다 아는 사람들이야. 근데 이름은 하나도 몰라. 그래도 얼굴 보면 알아. 서로 이름도 안 물어봐. 그냥 국수 먹으러 오면 보고 그러는 거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국수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삶아진 국수를 찬물에 헹구는 소리, 주방에서 그릇들끼리 부딪히는 소리와 후루룩 후루룩 손님들의 국수 먹는 소리가 하도 듣기 좋아서 호기롭게 중짜리 국수를 한 그릇 주문했다. 양은 생각보다 많았다. 새벽부터 우려낸 멸치육수에 말아낸 국수는 깔끔하고 담백했다. 우리가 상상하는 가장 국수다운 본연의 맛이랄까. 갑자가 장난기가 동해서 쓸데없는 질문을 했다. 하루에 백 그릇쯤 팔아요?

 

하루에 백 그릇 팔면 벌써 부자 됐지. 오늘 하루 종일 나 장사하는 거 봤으니까 알거 아니야. 한 번에 열 명씩 스무 명씩 오면 많이 팔지. 그런데 우리 집은 한두 명씩 와서 먹고 가니까 딱 그만큼만 파는 거야. 욕심내서 많이 팔 필요가 없어. 그냥 우리 집 형편에 맞게 파는 거지.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어. 그런데 지금은 내가 만드는 국수가 맛있다고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그게 참 좋아. 하나님의 은혜야. 작년에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로 식구들이랑 다녀왔어. 칠순 기념으로. 너무 좋았지. 마음이 평온해. 욕심 안 부리고 욕심 부릴 것도 없고. 사람이 마흔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져야 해. 나는 손님들이 얼굴이 말갛다고 하는데 워낙 욕심이 없으니까 그런가봐. 가게 찾아오는 손님들이 너무 고마워.”


    

국수는 평범하지만 참 묘한 음식이다.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고 누구든지 어렵지 않게 조리할 수 있다. 값도 싸고 먹기도 편하고 어지간하면 맛도 나쁘지 않은 음식이 바로 국수다. 국수집도 여기저기 참 흔하다. 소재지마다 국수집 한두 곳은 꼭 있다. 그래도 우리들 대부분은 단골 국수집이 있다. 기왕이면 그곳에 가서 먹어야 제대로 된 국수 맛을 볼 수 있다. 밥 때가 지났어도, 여럿이 아니고 혼자여도 마음 편하게 문 열고 들어가 국수 한 그릇 호기롭게 주문할 수 있는 우리 국수가 있어서 봉동읍엔 소소한 매력 하나가 더해졌다. 사장님, 여기 국수 중짜리로 한그릇 주세요!


/글·사진= 장미경(장미경은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고산미소시장에서 공동체가 만든 제품을 파는 편집매장 홍홍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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