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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동마을의 새해] 마을회관 풍경2020-01-09

[기동마을의 새해] 마을회관 풍경


대둔산 너른 품이
우리에겐 소중한 보물이지

 

산비탈에 10여 가구 옹기종기 살아

관광객 상대 약초-나물 노점 생계

관광객 줄면 마을회관서 소일거리


- 기동마을에서 훤히 보이는 대둔산


기동마을을 찾은 첫날, 유독 날이 따뜻했다. 추위가 꺾이고 햇살이 따사로운 한 때. 드높이 솟은 대둔산이 감싼 기동마을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을회관에 도란도란 모여 앉은 마을 어르신들이 점심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화신(82) 어르신은 겨울엔 이 맛에 마을회관에 모인다며 묵묵히 음식을 준비했다. 이날 점심은 따끈한 갈비탕 한 그릇이었다.

 

기다려지는 관광버스

이곳 어르신들에게 대둔산은 생계유지 수단이자 마을의 자랑거리다. 현재 기동마을 주민의 대다수는 대둔산 관광객들에게 약초와 나물을 팔고 있다. 금산 약초시장에서 사온 약초나 근처 산에서 캔 나물을 파는 것이다. 저 멀리서 관광버스가 보이면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노점으로 향한다.



박정숙(71) 어르신은 옛날에는 이 동네가 온통 민박집이었어. 그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거든. 전북대학교에서도 많이 오고 서울, 부산, 대전 할 것 없이 다 왔지. 주말이면 방 하나도 안 남을 정도였으니까라고 말했다.

낯선 관광객들을 자주 만나서일까. 기동마을 어르신들은 처음 보는 낯선 객에게 한없이 다정했다. 이춘자(77) 어르신은 여까지 왔는데 밥 한 그릇은 먹고 가야지 않겠나. 그냥 앉아서 밥이나 한 술 뜨게라고 말했다. 어린 객들이 일손을 도우려하면 손사래 치며 자리에 앉히곤 했다.


- 마을 회관에서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기동마을 주민들


-오늘 기동마을회관 점심 메뉴는 갈비탕이다


이곳 어르신들은 사람에게만 정을 주는 게 아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고양이에게도 아낌없는 정을 쏟는다. 귀찮을 법도 하지만 어르신들 눈에는 복슬한 털, 살랑대는 꼬리를 가진 특별한 손님이다.

가게에 앉아있으면 고양이가 한 번씩 와. 그러면 우리가 먹을 거를 던져줘.” 정화신 어르신은 점심 때 먹고 남은 걸 따로 챙겼다. 고기를 먹고 남은 뼈나 살점들을 고양이에게 가져다주기 위함이다. 박정숙 어르신도 고양이가 있으니까 마을에 쥐가 별로 없다. 이렇게 같이 사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관광버스가 오지 않을 때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겨울엔 관광객들이 줄어서 노점에 나가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주로 마을회관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겨우내 찾아올 손님들을 함께 기다려본다.

 

경로당에선 무슨 일이

이춘자 어르신은 아침에 나와서 저녁까지 있다간다. 우리는 여기서 같이 밥 해먹고, 얘기하고 논다며 회관에 오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고 말했다.

평균 나이 18세에 기동마을로 시집을 와서 한 평생을 살고 있는 할머니들에게서 기동마을의 역사 한 귀퉁이를 들을 수 있었다.



기동마을의 최고령 김기수(89) 어르신은 몇 백 년 전에 여기가 바다였다가 육지가 된 거다. 그래서 이렇게 깊은 것이라고 말했다.

바다가 육지로 변하고, 대둔산 관광단지가 생기기 전 기동마을엔 호두나무가 가득했다. 호두를 수확하면 10포대 20포대가 넘게 나올 정도라 한때 마을의 가장 중요한 생계수단이었다. 관광단지가 들어선 후, 호두나무를 전부 베어내 이제는 볼 수 없는 그리운 옛 모습 중 하나라고.




어르신들에겐 기동이라는 이름보다 텃골이라는 옛 이름이 더 익숙하다. 골짜기 마을답게 이곳의 길은 한참 좁아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정도다. 경사가 급한 길을 지나야 겨우 마을에 들어올 수 있다. 좁은 길옆에는 삿갓다랑이가 있다. 삿갓다랑이는 아주 작은 논들을 말한다. 21다랑이가 2마지기(400) 정도 된다. 마을이 산간지역이라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아주 귀했던 터라 조그마한 땅이었음에도 감사하며 농사를 지었다고 한다.

김기수 어르신은 옛날엔 길에서 많이도 미끄러졌다. 물을 길어다 먹을 적엔 머리에 대야를 이고 저 멀리까지 힘들게 다녔다. 이놈의 골짜기에서 어떻게 살았나 모르겠다며 웃었다.

 

대를 잇는 끈끈한 정

13가구가 모여 사는 기동마을은 70~80대가 대부분이다. 농사짓기에 척박한 땅이지만 평생을 함께한 어르신들 얼굴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고생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면서도, 어제 힘든 일을 얘기하면서도 표정이 밝다. 회관에서 담소를 나누는 어르신들에게 마을의 자랑거리가 무엇인지 물었다. 첫째는 대둔산, 둘째는 향우회라고 답했다.

정화신 어르신은 마을의 자손들이 해마다 마을 사람들을 챙긴다. 어버이날이 되면 돈을 걷어가지고 관광 보내주고 맛있는 것도 사준다.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 마을만의 자랑이라고 말했다.


- 대둔산 정상 마천대 아래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기동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대를 잇는 끈끈한 정이 있기에 어르신들의 몸과 마음이 풍족해진 게 아닐까. 이곳 주민들은 함께 장사 하고, 밥을 나눠먹고, 험담도 하지 않는다.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서로 가족처럼 생각하는 마음은 오랜 전통으로 이어오고 있다. 얼마나 서로 끈끈한지 마을을 떠난 주민의 제사도 기동마을 주민들이 지낼 정도라고.

이날도 나이가 많은 사람은 회관 바닥을 청소하고, 나이가 적은 사람은 밥을 준비한다. 기동마을의 가장 큰 행사인 동네 계는 음력 동짓달 초닷샛날에 지낸다. 여느 모임과 마찬가지로 모여서 같이 밥 먹고,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눈다.

나누는 정을 간직한 기동마을 주민들은 올 새해 역시 함께 맞이했다. 마을회관에서 뽀얀 국물의 떡국을 만들어 함께 먹은 것이다.

 

[관련] 기동(基洞)마을은


기동마을은 골짜기에 터 잡은 걸 뜻하며 지어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현재 마을 가구 수는 13가구로 대둔산에 자리한 상가까지 합하면 총 53가구다. 마을이 충청남도와 인접해 있어 논산시, 금산군에서 이주한 사람이 많다. 옛날에 마을에서 금산군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배티재라는 고개를 넘어야 했다. 배티재는 과거 권율 장군이 험한 지형을 이용해 일본군을 막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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