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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의 완주이야기 64] 경천면 가천리(佳川里)2019-11-14

[이승철의 완주이야기 64] 경천면 가천리(佳川里)


경천면은 가천[가천, 오상, 만석, 구재, 요동, 동향동, 시우동, 신흥(묵방)] 경천(경천, 오복, 갱금, 죽림, 대석, 성가, 오봉) 용복(용복, 석장, 신덕, 구수동, 만수동) 법정 3개리로 구성되어 완주 10면 중 막내 격으로 얘기 거리가 많다. 조선시대 고산현() 운동하면(雲東下面)이었고, 서기1914년까지 북동부 운동상면(雲東上面)’과 각각 독립 면이었으나 1935년 두 면을 합쳐 운주면(雲洲面)이 되었다.

행정편의상 1966경천출장소(庚川出張所)’를 두었고, 1989용복’+‘가천’+‘경천’ 3개리를 묶어 경천면으로 승격 오늘에 이른다. 경천면은 경좌(庚坐:개앉음)라는 지명에서 자와, 가천(佳川)에서 을 따 경천인데 이제부턴 가천 이야기이다.

최고 자랑거리가 가천초등학교(1929년 개교)로 왜 여기 있나. 이 마을이 운동하면소재지이었기 때문이다. 아담한 학교 교정에는 교장공적비가 있고, 여러 개의 거사비(去思碑)는 마을 안에 있으며, 경로당에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일정시대 정씨 금방아간이 있었고, 금을 다루니 금 부자 그 당시 상여 나갈 때 찍은 사진에 만사가 수백 장이었다.

김재근(金在靳:1900년생)한약방은 병을 잘 고쳐 주민이 좋아했고, 의원은 돈 벌어 기뻤다. 잘 살아야 큰일을 한다. 일곱 살에 어머니(1940), 이어 아버지(1943)가 죽어 고아가 된 조카 김춘회(1010일 작고)를 길렀고, 조카는 장성해 건축업으로 성공 85세를 넘어서도 에쿠스를 타고 다니나 어릴 적 이야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거물이었다. 신흥은 지형상 언젠가 저수기가 들어설 자리이니 주민은 반대하지 말고 지명이 지닌 뜻대로 가천’-‘신흥을 부각시켜 천하제일 폭포 동을 만들어야 한다.

묵방은 먹방. 산이 가깝고 높아 숲이 우거져 낮에도 어둠침침 이래서 자연스레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 박충 산이 있었다. 벌목계약 후 돈까지 오갔는데 6·25전쟁이 일어나 작업을 못했고 4-5년이 지나서야 일을 하려하니 산주 박씨가 이제 못 베어간다.’고 제동을 걸어 결국 다툼이 법정으로 갔다.

가천은 소돼지축사가 없다. 한때 뒤처지는 걸로 보였으나 지금은 공기가 맑아 땅값이 비싼 청정지대로 서울에서 돈 벌어 고향에 큰 집 지은 멋쟁이가 여럿이다. 마을 위편 길가에 스승을 잊지 말자며 세운 사은비(師恩碑)가 좋은 인상을 준다. 곶감이 유명하고 대추는 경천을 대표하는 특산물 1호에 든다.

여름철 저수지로 들어가는 물길(터널 수문)을 이리저리 막으면 물고기를 몽땅 주어 담는 아름다운 고장 이름 가천과 딱 어울린다. 9세기 백제를 무너뜨린 신라가 점령지 화해수단으로 화암사를 지었다고 봐야 한다. 전계현 목사가 여기 출신이다


/이승철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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