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에 옥포마을] 가을신부 이승옥 할머니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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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 가마 올려 타고 시집와
“아마 나밖에 없었을 걸?”
빗소리 들으며 열여덟 혼례 날 회상
옥포마을 경천저수지 위로 물안개가 떠다녔다. 저수지를 지나 마을 윗길로 올라가보니 외양간이 나오고 건넛집에 호박넝쿨이 보였다. 그 집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호박을 나눠주는 ‘호박할머니’ 이승옥(86)할머니가 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는 우리를 보시고 “어여 들어와”하며 반겨줬다.
빗물을 훌훌 털고서 집 거실 바닥에 앉았다. 할머니는 옛 이야기를 마치 어제 일인 듯 선명하고 세세하게 설명했다. “어디 보자…”라는 말과 함께 할머니가 옥포마을로 시집왔을 적으로 돌아갔다.
“내 나이 열여덟 되던 해였어. 우리 친정아버지가 이 동네 구장이었는디 시아버지 집에서 밥을 여러 번 잡쉈대. 그 때 아들을 끔찍하게 여기는 모습을 보고 우리 딸을 여기로 시집보내야겠다고 생각했대. 귀여움 좀 받겠다고 생각하셨겄지.”
그렇게 양가 부모끼리 먼저 사돈을 맺고 혼인 날짜를 잡았다. 여름은 더우니 가을이 좋겠다고. 1951년 선선한 가을날에 승옥 할머니는 신부가 되었다.
그 당시 결혼식 풍경은 어땠을까. 성북리 골짜기에 살았던 승옥 할머니는 경천저수지를 건너 옥포마을로 시집왔다. 할머니는 “그 때 배 위에 가마까지 싣고 오는 사람은 나 밖에 없었다”며 웃었다.
결혼식은 집 마당에서 펼쳐졌다. 마당 가운데에다 큰 상을 놓고 솥에다 큰 닭을 찌고 있었다. 신부와 신랑은 곱게 차려입은 채 서로 절을 하며 식을 올렸다.
할머니는 첫날밤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첫날 저녁은 못 잊는다. 방에는 술 한 병과 예쁜 소반에 과일이 담아져있는 술상이 있었다. 그 땐 문이 창호지여서 옆방에서 친척들이 구멍 뚫어가지고 술을 먹나 안 먹나 쳐다봤다”며 웃었다.
어려웠던 시절 할머니네는 ‘상 추렴’이라고 동네에서 돈을 많이 걷는 집이었다. 남편은 농사짓고 할머니는 길쌈하고 베 짜서 옷 만들고. 그렇게 세월을 바삐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지난 해 할머니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난 만큼이나 적적함이 느껴질 터. 하지만 다행히도 할머니에겐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간호사 국난영(36)씨가 있어 말벗이 되고 있었다.
건강복지공단에서 나온 난영 씨는 일주일에 세 번 찾아 와 할머니의 건강관리를 책임지고 있다. 허리와 무릎이 안 좋은 승옥 할머니를 위한 물리치료도 겸하며 말이다.
“11시에 와서 40분 동안 치료를 해드려요.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까 최대한 빨리 많은 걸 하려고 하죠. 저희가 하는 일이 어머님 같이 병원다니기 힘든 지역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난영 씨가 말했다.
할머니는 집에 난영 씨가 오고 나서부터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부엌에 있는 호박 두 개를 내오며 “이번에 딴 건데 갈 때 가져가”라며 챙긴다. 또 거실에 있는 홍삼 절편을 쥐어주며 “나는 이가 안 좋아서 못 먹어”라고 말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호박을 나눠줘 ‘호박할머니’로 불리는 승옥 할머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 싶은 마음이다. 처음 만난 낯선 이도 할머니에겐 곧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