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에 옥포마을] 김두연·이동례 노부부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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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네에서 자라 부부의 인연을 맺은 김두연 이동례 부부. 새로 지은 집 앞에서 부부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애들 갈칠려고 물고기 머리이고 장터마다 팔러 다녔어"
한 동네서 자라 중매로 결혼
자식 먼저 보낸 상처에
“다시 태어나면 시집 안 갈래”
비가 내리는 중에도 이동례 할머니는 마당에서 된장에 넣을 콩을 삶고 있다.
이동례(83) 할머니는 마당에서 비를 맞고 있었다. 솥단지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며 솥 안을 바가지로 휘젓는다. 허연 김 속에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콩 삶고 있어. 된장이 어찌나 짠지 거기에 섞어서 같이 치댈라고. 한참을 끓여야해.”
우산이라도 쓰시지, 하니 “비 오는데 어쩌라고. 그냥 맞아도 돼”라며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저 멀리 치워버리신다.
할머니 집은 지금 공사 중이다. 지난 4월부터 집 공사를 시작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30여 년간 살던 슬레이트집을 철거하고 벽돌로 된 깔끔하고 단단한 집을 짓고 있다. 자식들이 이제는 편하게 사시라며 시작한 공사다.
“어제도 서울 사는 아들이 밤늦게까지 집 짓는 거 하다 올라갔어. 여기가 우리 밭이 있던 곳인데 밭을 없애고 집을 지은거야. 앞에는 잔디를 심는대. 몰러. 놀이터를 만들 건지 뭘 만들 건지. 나는 잘 몰러.”
남편 김두연(87) 할아버지와 동례 할머니는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마을 토박이인 두연 할아버지와 7세에 삼례에서 이 마을로 이사 온 동례 할머니는 친오빠의 중매로 결혼 했다.
“스물한 살에 결혼해서 6남매를 낳았어. 저수지서 물고기도 잡고 농사도 짓고 일 겁나했지. 또래 아낙들이 있었어도 일 하느라 놀지도 못했어. 애들 갈칠라고 잡은 물고기 머리에 이고 봉동이며 삼례며 고산장이며 부끄러운지도 모르고 다녔네.”
어린 자식들은 학교를 가려면 세 개도 더 되는 산을 넘어 다녔다. 자갈도 아닌 바위가 있는 험한 길이었다.
“학교 다니는 애들이 줄을 서서 그 산을 넘어 다녔어. 진짜 욕봤어 학교 다니느라. 딸이 학교 가면서 얼마나 울었나 몰라. 힘들다고.”
두연 할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신다. 하지만 기억력이 좋아 옛날이야기를 물으니 눈을 반짝이며 말씀하신다. 과거 할아버지는 어부였고 농부였다.
“내가 이 마을서 태어난 토박이야. 경천저수지가 1953년에 준공됐는데 내가 1933년생이거든. 저수지가 없을 적에는 참 큰 마을이었대. 마을에 들판이 좋았는데 그게 다 저수지가 됐지. 이쪽은 집도 없는 골짜기였어. 애들 갈칠라고 일을 많이 했더니 무릎이 안 좋아.”
부부는 지난 2년여 전 큰아들을 저세상으로 보냈다. 기쁜 일이 있어도 맛있는 걸 먹어도 큰 아들이 떠오른다. 아물지 않는 상처. 아들 이야기가 나오자 동례씨는 비가 내리는 창밖을 말없이 바라본다.
“자식 한명을 얼마 전에 저세상으로 보냈어. 암으로. 점점 마르더니 밥이 안 맛나대. 그러다가 수술도 못하고 죽었어. 아픈 걸 부모한테도 안 알리고 그랬더라고. 실은 이 집을 지으니 더 속상해. 큰 아들이 더 생각나. 그 놈은 이제 가고 없으니까.”
할머니께 물었다. 과거로 돌아가면 뭘 가장 하고 싶으냐고.
“내가 어릴 때로 돌아가면 다시는 시집 안 갈 거야. 혼자 살다 죽고 싶어.”
그럼 자식들 못 보시는데요?
“그럼 자식이 죽는 건 안 볼 거 아냐.”
계속해서 비가 내린다. 나무를 땐 솥에서는 아직 콩이 익어가고 있다. ‘6시간은 푹 익혀야 퐁등퐁등 해진다’며 할머니가 건넨 콩이 입안에서 사르륵 녹는다. 가을비를 맞으며 삶아지고 있는 콩을 동례 할머니와 먹으니 마음이 포근해진다.
“나는 이제 하고 싶은 게 없어. 아프지 않고 죽는 게 소원이라면 소원이네. 그나저나 오늘은 비가 솔찬히 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