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반기는 화원마을]텃논 가꾸는 임일빈씨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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듬성듬성 장미가 핀 돌담 아래 선 임일빈씨. 이 돌담집은 일빈씨가 어린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텃논 가꾸는 임일빈씨
추억이 있어 돌아올 수 있었다
퇴직 후 전주서 오가며 농사
“옛날에 조부모께서 주막 운영”
마을 가운데 논을 텃논이라 부른다. 화원마을에도 텃논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작게나마 천이 흐르고 커다란 나무 그늘이 있는 그야말로 명당이다. 그곳에서 땀 흘리며 정성스레 작물을 가꾸는 사람이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임일빈(60)씨다.
그는 전주에서 30년 정도 일 하다 퇴직 후 이곳에 와 농사를 시작했다. 고향 가까이서 오갔으니 토박이라 해도 무방할 터. 그는 밭에서 좀 떨어진 집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곳이 예전에는 주막이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했었다”고 말했다. “옛날에 우리 마을은 임실이나 옆 마을에서 남부시장으로 넘어가려면 거쳐야 하는 곳이었어요. 보광재를 넘는 게 제일 빠른 길이었으니까요.” 주변에 나무가 많아 주로 땔감으로 팔았다고 한다. 당시에 지게꾼들이 마을에 들러 쉬었고 그 때 일빈 씨 할아버지네 주막이 큰 역할을 했던 것.
“학교가 끝나면 곧장 주막으로 달려갔어요. 할머니는 꼭 사탕 하나씩을 쥐어줬어요. 당시 친구들이 제 뒤를 졸졸 쫓아다녔죠.”
그는 일곱 형제 중 여섯째다. 큰 형은 이전에 구이중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지라 경복사지 홍보에도 나섰고 당시 발굴 현장에도 함께 했다. 일빈 씨는 집 안에 있는 사진첩을 보며 형이 발간한 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형님이 살아계셨으면 경복사지 터에 대해서도 더 잘 알려줬을 거예요. 나보다 훨씬 전문가니까.” 사진첩을 어루만지는 손끝에서 큰 형에 대한 진한 그리움이 느껴졌다.
일빈 씨에게 화원마을은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지금도 전주에 집이 있지만 날마다 마을로 와 농사짓고 옛집에서 쉬면서 지낸다. 밭에는 대파, 비트, 토마토, 구기자, 무, 오이, 상추가 있고 묘목도 기른다. 농작물은 주소지가 있는 전주농협에 내다 팔고 있다. 그는 “직장 다닐 땐 공부도 안 했는데 여기 와서는 안 할 수가 없다. 농사는 돈이랑 직결된 일이지 않냐”고 말했다. 열혈 농사꾼이자 모험가인 일빈 씨는 남들이 씨 뿌릴 때 안 뿌리고 수확할 때 하지 않는다. 상품 가치가 뛰어 올랐을 때 팔기 위해 생각을 바꾼 것이다. “사람들이 나보고 왜 그러냐고 해요. 하지만 농사도 거꾸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여름 무를 4년째 연습중인데 거의 성공해가는 중이에요. 200평 가지고 천만 원 버는 사람 얼마 없어요. 남들 할 때 안 해야 합니다.” 4년 동안 거듭된 실패 끝에 나름의 비법이 생긴 것이다. 슬쩍 물어도 절대 못 알려주는 그런 비밀이자 비법 말이다.
술도 안 마시고 노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일빈 씨. 그에게는 농사짓는 게 노는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이제는 고향 땅에 돌아와 밭으로 출근하는 그에게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남들보다 다른 때에 농사지으며 성공하는 것이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듯 그에게도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